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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2015년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 (American Sniper, 2014)>, <폭스캐처 (Foxchatcher, 2014)> 등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중 <와일드 (Wild, 2014)>는 그 중에서도 화룡점정이 아닐까 한다. 시나리오 고갈이 한참은 됐다고 소문난 헐리우드의 움직임이 아시아 영화를 포함한 제 3세계 영화들에 대한 직수입 또는 리메이크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면, 이제 좀 더 현실감에 근거한 극적 전개를 추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블의 히어로 시르즈물을 대표로,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감독의 <인터스텔라 (Interstella, 2014)> 등 판타지적인 세계를 좀 더 현실에 근거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현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종교와 철학, 사상 들의 세력 다툼을 절묘하게 대입시켜 나름대로의 철학적인 묘미까지 가미할 수 있는 움직임이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사안이라면, 완전히 99% 현실적인 우주를 다룬 <그래비티 (Gravity, 2013)>에서 출발하여 아예 실존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나 알려진 이야기들을 잘 버무려 현실감을 극대화시킨 영화들이 헐리우드를 지탱하게 해주는 또다른 좋은 움직임이라 생각된다. 


요새 영화를 볼때에 영화에 대한 평가나 내용, 예고 등도 전혀 보지 않고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채로 영화 관람에 임하곤 했는데, <와일드> 또한 전혀 별다른 인식 없이 덜컥 보게된 영화다. 따라서 <금발이 너무해 (Legally Blonde)> 시리즈로만 기억에 남아 있는 리즈 위더스푼 (Reese Witherspoon)의 등장이 반가웠고, 그녀가 가진 여배우로서의 화려함을 모조리 버린 채 화장기 없는 얼굴로 '와일드하게' 촬영에 임한 그녀의 정신과 나이가 들수록 의심의 여지를 없애는 그녀의 연기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영화 <앙코르 (Walk The Line, 2005)>는 아직 못봤음)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대체 <와일드>를 원작이상의 가치로 끌어올리고 재치넘치는 연출로 영화가 주는 무게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영민하게 대중의 입맛을 자극한 이 감독이 누군가 하고 찾아보니, 역시 <까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2011)>의 각복을 쓰고 연출한 장 마크 발레 (Jean-Marc Vallee) 감독이었다. 사실 <까페 드 플로르> 자체는 무엇인가 시나리오의 빈틈과 함께 여물지 않은 연출의 신선함이 새로운 자극과 동시에 일종의 불안함을 지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명작을 연출할만한 재능을 지녔음을 증명해 내었다.  


<포스터 from IMDB>


우리나라 개봉때의 포스터는 아무래도 리즈 위더스푼을 클로즈업 하여 마케팅을 하였지만, 본래 미국 개봉 포스터의 경우 배우 보다는 '와일드' 자체를 보여주는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관객없이 영화 없다지만, 영화 자체를 강조하는 포스터의 감각을 시장 상황에 막혀 보여주지 못함이 아쉽다. 


<국내 개봉 포스터>


이런 배우의 매력과 감독의 연출이 합쳐진 결과로, 와일드를 관람하면서 처음 느꼈던 '리즈 위더스푼이 나이들면서 많이 망가졌구나?'의 생각이 영화 말미에 가서는 '정말 아름다운 배우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리즈 위더스푼의 태생의 생김이 가져온 무엇인가 나약한 이미지가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때문에 그녀를 더욱 강하게 보이게 만들고, 또 동시에 그녀의 연기가 가져오는 씩씩한 이미지가 극 중에서는 그녀를 동정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그녀의 이런 매력을 가감없이 영화로 가져오는 데에 성공했고, 그 때문에 영화는 무한대의 동력을 얻었다. 


1,100 마일 (약 1,800km)를 관객과 함께 걸으면서도 우리는 전혀 지치지 않았고, 그녀가 만든 사람들의 삶과 자연이 주는 선물을 카메라는 담담하게 비쳐줄 뿐이었다. 수많은 배우들 속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배우의 에너지는 모든 작품에서 중요하겠지만, 특히 주인공 하나로 대부분을 이끌어가야 하는 <와일드> 같은 작품에서 주연배우는 그 영화 자체가 되어야 한다. 리즈 위더스푼은 그런 의미에서 '와일드'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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