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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블로그글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좋은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탄탄한 시나리오만큼이나 연출에 있어서도, 과함과 덜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능수능란하게 배우들의 연기를 뽑아내는 것은 종종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이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 시대에 있어서  최민식, 황정민, 전도연처럼 영화 전체를 한 배우의 아우라로 받쳐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점에서 김성제 감독의 연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다루기 힘든 개성넘치는 베테랑 배우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또는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에 힘을 실을 수 밖에 없는 제작사의 압력 속에서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영화에 스며들게 하기란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곧 제작자의 입장에서 PD의 역할을 하던 사람이, 그것도 이전에 제대로된 연출작도 없던 상황에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감정적으로는 좋은 말만 적고 싶으나, 칭찬보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 굳건하게 자기 중심을 잡은 감독을 위한 글이라 생각한다. 


지루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각색과 타이트한 연출을 통해 빛을 발했으나, 기-승-전-결 이라는 느낌보다는 왠지 기-승-승-결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확실하게 터져주어야할 내용에 너무 짧게 시간을 할애했다던가,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했으면 좋았을만한 장면에서 오히려 카메라가 관조하면서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나리오의 모든 부분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힐 필요는 당연히 없으나, 특정 부분만큼은 (감독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 등) 무채색을 벗어도 좋지 않았을까? 이 덕분에 작품의 객관성을 증가했으나,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이라는 과감한 선택이 그다지 과감하게 보이지 않는 단점을 노출했다. 


음악은 좋은 장면들에 보탬이 되기에는 그 힘이 약해 보였다. 수많은 작품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조영욱 음악감독은 최근의 <무뢰한>이나 이전의 <변호인> 등에서 개성있고 맛깔스러운 음악을 적절히 튀지 않게 선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수의견>의 그것은 그의 경력에 비해 다소 밍숭맹숭한 느낌이다. 제작비의 한계로 음악에서도 많은 스탭을 고용하지 못하고 홀로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 교도소 장면은 무채색 계열의 배경에 인물에 시선의 중심이 놓일 수 밖에 없는데, 좀 더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조명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부분도 역시 적은 제작비와 관련이 있었을 것 같다. 아쉬움은 이 정도. 


윤계상은 이미 검증되었지만 주인공으로 극 전체를 이끌고 감정을 담아내는데 모자람이 없었고, 유해진과 이경영은 연기의 신다운 모습 - 동시에 익숙하다는 한계 - 을 보여주었다. 자칫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었던 김옥빈은 특유의 정서를 배역에 녹여내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스며들어 극을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었다. 조연인 김의성과 권해효는 연기의 베테랑이 왜 필요한지를 그대로 보여준 적절한 예이다. 전체적으로는 상투적인 인물상이면서도 그 디테일에서는 상투적이지 않은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 시나리오 상의 그들의 배역은 극 전체를 통해 살아 숨쉰다. 


영화와 드라마 상의 단역, 조역으로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엄태구도 눈에 띄어 기뻤다. 영화 <잉투기>의 주인공 이후로 눈여겨 보고 있는 배우인데, 만약 그의 연기력과 능력에 맞는 더 큰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드라마-영화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 영화의 덩치는 커지고 알맹이는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2015년에도 여전한 가운데에서, <소수의견>과 같은 영화가 어렵게 개봉해서 상영이 되어 반갑고, 동시에 좋은 영화를 많은 관객들이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론과 대중에게 더 화제가 되고 더 주목을 받았어야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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