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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인디신을 한발 떨어져 지켜봐 왔던 나름의 소감입니다. 개성 있는 인디 뮤지션들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음악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고, 그 안에는 눈에 보이는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이 이유들을 녹여 10가지의 항목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1. 직업 의식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돼.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는 순진한 생각입니다. 본인의 만족만을 위한 모든 활동은 취미에 불과합니다. 직업은 노동이 수반되고 그 노동에는 꾸준함, 성실함, 땀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취미와 직업의 차이는 대가입니다. 취미는 나의 만족 자체가 대가이므로, 아무런 실질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마치 매우 여유 있는 듯 행동할 수 있죠. 

직업은 대가를 위한 노동이므로 여유를 부릴 수 없습니다. 경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위해 끊임없이 본인의 실력을 키워야 하고,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이나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미 정상급에 있는 배우나 음악가들이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본인의 연습에 투자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2. 본인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기 검증

 

가수라면 본인의 목소리와 톤, 노래 실력에 대한 검증이 때때로 이루어져야 하죠. 검증은 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피드백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검증에 따라 나 자신이 탁월한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직업의식 전에 취미로서의 음악에서는 그다지 자기 검열이 이루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프로가 아니므로 지인들은 관대하게 평가합니다. 칭찬도 많겠죠. 따라서 취미로서의 음악은 때때로 자기 검열의 객관성을 흐리게 만듭니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음악 커뮤니티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본인의 음악을 들려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자기 검열을 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 본인을 노출시키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댓글을 받아보는 것도 할 수 있죠.

 

 

 

 

3. 대중성에 대한 고찰

 

예술은 표현이고, 표현의 당사자만큼 중요한 것이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대중입니다. 내 음악이 공감을 얻으려면 대중에 대해서도 공감해야 합니다. 사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음악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인디 뮤지션의 실패 요인 중 가장 많이 관측되는 것이 발전 없이 과거의 음악을 고집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나는 유행 따위 따라가지 않아’라는 말에 현혹된 것이죠. 

예술의 본질로 이야기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이 예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면, 그 창의성은 ‘새로움’이 되겠죠. 대중을 주도하는 트렌드는 이 ‘새로움’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트렌드를 멀리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본인의 영역으로 가지고 와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반영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뮤지션에게 대중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음악을 그만둔 인디 뮤지션들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본인은 분명 대중의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태도는 대중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딴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야?’

 

 

 

 

4. 본인만의 명확한 음악 스타일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경지는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인의 음악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면 이미 명확하지 않은 것이죠. 

음악에 대해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예술 자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는 생각 자체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새로운 음악에 대해 우선 그 장르를 통해 받아들이게 되죠. 따라서 본인이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해 스스로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하고 유명해지면, 후에는 뮤지션 스스로가 장르가 됩니다. 이때부터 팬들은 장르로서 그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듣게 되죠.

한 장르가 되기까지 무수한 음악들이 나오고 사라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본인만의 음악 스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적인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 내고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과정을 긴 세월 동안 지속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새에 본인만의 스타일 잡히게 됩니다. 많은 뮤지션이 이 부분에서 좌절합니다. 빨리 인기를 얻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성을 알면 곡을 쓸 때부터 복잡한 부분을 단순화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편곡을 알면 작곡이나 작사 때부터 편곡의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곡을 쓰게 되고, 믹싱을 알면 편곡에서의 악기 배치나 음역대를 고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스터링을 알면 믹싱을 어떻게 해야 마스터링에서 잘 곡이 뽑혀 나올지 알게 되겠죠. 마케팅을 알면 곡을 제작할 때만큼이나 마케팅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비용 문제가 크다는 것도 고려하게 됩니다. 

‘나는 좋은 음악을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알아서 알아봐 줄 거야’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인디 뮤지션들이 등한시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에는 비용이 들고, 비용 효율적인 마케팅을 위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본인의 SNS 채널을 열심히 키워 본인의 음악을 홍보하는 방식도 있고, 좋은 마케팅 업체를 찾아 일정 수익을 나누며 마케팅을 맡길 수 있습니다. 곡이든 뮤지션 본인이든 결국은 시장에서의 인지도의 싸움이고, 인지도 상승을 위한 마케팅이 됩니다. 물론 이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일 경우는 제작된 음악 자체의 상업성이겠죠.

 

 

 

 

6. 협업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천재 프로듀서라도 음악 제작 및 유통, 배급의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있고, 본 인가 맞는 전문가를 선택하여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할 때에 프로에 더욱 가깝게 됩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직업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죠. 

물론 초기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사와 작곡을 했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편곡해 보고, 녹음해 보고, 어설프겠지만 믹싱과 마스터링을 해보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하다 보면, 본인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본인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기 검열’에도 포함할 수 있는 내용이죠.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마케팅에 대한 내용도 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행사를 잡아도 본인이 직접 발로 뛰는 것보다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업체를 통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협업하는 척하는 음악계의 양아치들이 많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양아치들은 피할 수 있습니다. 협업을 통해 음악계에 본인 자체를 더 오픈할 수 있고, 음악이 만들어지고 배포되는 과정 또한 오픈된 마인드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모든 직업에 있어서 통용된다고 생각합니다.

 

 

 

 

7. 건강 관리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점심때쯤 일어나서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다가 다시 밤부터 반짝하는 뮤지션들이 오래 버티는 경우 거의 못 봤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밤’은 창작자가 아니라 감상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단어입니다. 

 

창작은 뇌의 활동이고, 뇌가 좋은 자극을 받아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이 어쩌니 저쩌네 하는 꼰대 같은 음악가들과의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는 한두 번은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음악인이라면,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면서 몸과 마음의 바이오리듬을 유지하고, 술자리에 있을 시간에 다양한 아트를 경험하면서 뇌에 자극을 주는 게 훨씬 좋습니다.

 

안타깝지만 방만한 생활로 20대를 살다가 건강을 망친 인디 뮤지션들을 보아왔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이 자칫 지루하게 보여 예술인의 삶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창작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바로 지금부터 건강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체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8. 인맥

 

고립된 음악가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디 뮤지션이 함께하는 무대, 오디션, 행사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초기에는 페이랑 상관없이 많은 무대에 서고 많은 청중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서서히 자주 보는 뮤지션들이 생기고, 자주 협업하는 관계자들이 생기고, 자주 출연하게 되는 무대가 생깁니다. 이 관계는 앞으로 음악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내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내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본인의 실력은 물론이고, 그 일과 관련 있는 인물들과의 긴밀한 소통입니다.

개성 있다 하는 뮤지션일수록 이런 인맥에 소홀히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 말이 없다가 당일 약속을 갑자기 취소한다던가,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와 같은 태도를 가진 뮤지션이 사람 자체는 매우 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 편안한 관계는 있지만같이 일할만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인맥관리는 무엇을 특별히 주고 마음 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충실히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9. 법에 대한 이해

 

바로 저작권, 저작인접권, 실연권에 대한 이해입니다. 

 

제 블로그의 음원 스트리밍 수익구조 (https://www.pianocroquis.com/178) 같은 내용들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업체와 협업을 위한 계약을 하더라도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본인이 우선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업체 관계자도 고의가 아니지만 법적인 부분을 소홀히 하여 어설픈 계약서를 작성할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는 대형 업체와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https://www.komca.or.kr/CTLJSP)만 방문해도 자료실에 많은 법적인 자료들이 나와 있습니다. 음악 활동을 통해 어떠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시하는 표준 계약서(https://www.mcst.go.kr/kor/s_data/generalData/dataList.jsp? pMenuCD=0405050000) 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계약을 진행할 근거가 되는 것은 물론 뮤지션 본인의 인지도이겠지만, 인지도에 대한 분배율을 정할 때에도 법적으로 근거를 제시해야 상대방도 나도 납득하여 서로에게 좋은 계약을 추진할 있습니다.

 

 

 

 

10. 꾸준함

 

위의 9가지 내용들을 숙지하고 이행할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이 모든 것을 꾸준히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며칠 정도 건강관리해 보다가 다시 술에 빠지고, 대중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다시 본인 멋대로의 세계로 빠져들어 갑니다. 예술인인 척 있어 보이는 척하면서 20대를 보내고, 30대의 꼰대가 되어 후배 뮤지션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술은 그런 게 아니야 인마’

이런 분들 멀리하시고, 꾸준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취미로서 너무 행복했던 음악생활이 직업이 되는 순간 모든 직업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똑같이 겪으니까요. 이 부분을 견디고 극복하는 예술인들이 결국 살아남아 있습니다. 

내가 취미로 감상하던 예술이 주는 안락함과 정서에 젖어 있으면, 그 예술이 탄생하기까지의 정글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가장 경쟁이 치열하면서 가장 수익이 낮고 성공하기가 모든 직군을 통해 가장 어려운 분야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꾸준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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