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밍 (Summing)은 말그대로 합친다는 뜻이죠. 음향에서 서밍이란 모든 트랙을 합쳐서 원하는 음원으로 뽑아낸다는 말이고, 보통 원하는 음원은 스테레오 파일입니다. 특히 마스터링 스튜디오로 보내기 전의 최종 스테레오 파일을 만드는 작업이므로 믹싱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서밍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vst에 대한 얘기를 언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과거 아날로그 장비들이 스튜디오를 지배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각종 디지털 장비와 소프트웨어들이 좋아지면서, 소위 ITB (In The Box) 믹싱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박스 (Box)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믹싱이라는 뜻인데, 특히 믹싱이나 마스터링에서 필요한 각종 vst 플러그인 들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굳이 스튜디오의 외장 장비를 거치지 않고, 컴퓨터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이죠. 


아날로그 서밍의 유/무의미를 따져보기 위해서 살짝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 vst를 사용하는가?



수십년간 고가의 장비를 통해야 녹음-믹싱-마스터링이 가능했던 시절이 마무리되면서 점차 음악 제작의 많은 과정을 디지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작곡가와 엔지니어, 프로듀서 들도 시대에 흐름에 발맞추어 기존의 녹음 방식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좀 더 효율적이고 간편한 ITB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가의 외장 장비들을 플러그인 화 하던 초청기 시절에는, 과거의 장비들을 소프트웨어 적으로 '복각'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수십 년간 스튜디오를 지배했던 명기들을 복각한 vst가 실제 장비 못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면서 가격마저 싸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이러한 과거 명기의 복각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퀄리티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과거의 장비를 '완벽하게 복각'하지 못했다는 시각들이 많으며, 이로인해 ITB 믹싱을 기본으로, 여전히 외장 장비를 섞어서 사용하는 엔지니어들도 많습니다. 


'복각'을 기준으로 외장 아날로그 장비와 내부 소프트웨어 vst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날로그 장비들의 가격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까지 가는 반면에 vst는 아무리 비싸도 수십만원 선입니다. 사용 편의성 또한 vst가 압도적인데 하나를 구매해서 수십개의 모든 트랙에 걸 수 있는 반면에, 고가의 아날로그 장비들을 여러대 구비하기 힘들기 때문에 한번에 수십개에 걸기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vst는 프리셋을 지정해두고 그때그때 불러서 사용할 수 있으나, 아날로그 장비들은 직접 종이에 적어두거나 사진으로 찍어둬야 이전의 세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날로그 장비보다 vst들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 밖에 없는데, 결국은 '사운드'라는 측면에서 vst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아날로그 장비들은 여전히 스튜디오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에는 별 3.5개로 기재했지만, Universal Audio 등의 제품들은 별 4.5개를 줘도 무방할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사운드의 차이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결국 '사운드'를 따라잡기만 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아날로그 장비들은 점점 사라지게 되겠죠. 이 '사운드'라는 항목에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전기 신호의 흐름과 저항의 배치로 결정되는 아날로그 장비의 사운드는 일종의 '하모닉 디스토션'을 유발하게 되고, 여기에 연결된 케이블, 연결된 다른 장비들, 각 장비들의 성향에 따라 하모닉 디스토션의 결과가 조금씩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같은 브랜드의 같은 모델의 장비도 스튜디오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으며, vst를 제작하면서 참고한 장비의 소리가 어떠냐에 따라 vst의 사운드가 결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A라는 장비를 복각해 100% 완벽한 vst를 만들었더라도, A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마다 그가 처해 있던 환경에 따라 '100%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 사운드를 받아들이는 세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1인 작업자를 기준으로 아날로그 장비와 vst의 사용비율을 놓고 보면 대략 위의 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오랜 기간 스튜디오에서 고가의 장비로 경험을 쌓아왔던 아날로그 세대는 각종 플러그인의 출시를 지켜봤으며, 초창기 플러그인의 품질에 아무래도 만족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10년이상 익숙해진 스튜디오 작업 환경과 작업 플로우, 당시의 음악적 장르와 , 자신을 찾아주는 고객들이 생기면서 손쉽게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하기에는 여러가지 여건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플러그인은 아날로그 장비를 따라오기 힘들며, 아마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할 확률이 높은 세대죠. 


퓨전 세대는 자신들의 경력을 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아날로그 세대가 이루어온 경험과 노하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도 금새 익숙해진 세대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장비가 디지털 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젠가는 플러그인들이 아날로그 장비를 대체할 것이다'라는 믿음에 큰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 않죠. '플러그인의 편의성이 높고 품질도 좋으니 아날로그 장비와 함께 섞어 쓰면 가장 좋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산업의 발전가 더불어 보다 경제적인 가격에 보다 많은 기능을 보유한 제품들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장비와의 인연이 많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홈스튜디오 환경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장비는 접근하기 힘든 고가의 장비이기 때문이죠. 대신, 이들은 반강제적으로 플러그인으로 모든 제작 공정을 감당해왔고, 창의적으로 플러그인을 활용하는데에 익숙합니다. 아날로그 장비에 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얼마나 잘 복각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덜하죠. 그들에게 있어서 아날로그는 아날로그, 디지털은 디지털일 뿐입니다. 이제 그들이 묻습니다. 


"꼭 아날로그 장비가 필요한가요?"


거칠게 나누어버린 위의 3 세대는 모두 사운드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세대라도 도제 형식의 스튜디오에 인턴부터 근무하여 몇년이 지났다면, 아날로그 장비에 좀 더 익숙할테고, 플러그인의 편의성에 매료된 퓨전 세대라면 디지털로 모든 작업을 수행하려고 노력하겠죠. 


즉, 본인이 경험한 사운드에 의존해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운드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좋다', '안좋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일 뿐이죠. 정답은 없으니까요. 






거대한 플라시보 효과




1950년대의 인류는 음향적으로도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노, 스테레오 등의 개념도 이 시점에서 서서히 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컴프레서나 이퀄라이져 같은 장비들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각 회사들이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나온 모든 음악들이 당시의 음향 기술을 거쳐갔을 겁니다. 음반이 한번 히트하면 전세계를 휩쓸었고, 히트한 앨범이 어떤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는지, 어떤 엔지니어가 참여했는지도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1000가지의 아날로그 장비와 플러그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당시의 기술로는 많아야 10개 이내의 장비로 모든 사운드를 뽑아내야 했을 겁니다. 물론, 프로듀서와 뮤지션, 엔지니어들은 치열한 고민을 했겠죠. 이렇게 제한된 여건에서 제작된 앨범 중에서 세계적 히트를 친 앨범이 나오고 각 나라에 퍼집니다. 우리가 소위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을 생각할때 저마다 생각이 나는 사운드들이 있을 겁니다. 이게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 세계의 인류의 '향수'에 포함되어 버린거죠. 우리는 추억을 아름답게 만드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러한 '향수'는 '좋은 사운드'인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우리의 귀 이미 '과거의 좋은 사운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죠. '아날로그 사운드를 따라갈 수 없어'를 얘기할 때 실제 팩트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5~60%는 제한된 음향 기술과 장비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거대한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음향 기술은 현재가 훨씬 뛰어나지만, 과거의 사운드를 회귀하고자하는 욕망도 그만큼 강하기에 과거의 장비들이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듣기 좋은 불완정성



우리가 아날로그 장비를 통과시켜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대체로 하모닉 디스토션 (Harmonic Distortion)일 것입니다. 어떤 회로를 어떻게 연결해서 어떻게 저항이 발생하고 어떤 논리 구조로 돌아가도록 장비를 구성했느냐에 따라서 하모닉 디스토션의 느낌과 정도가 달라지겠죠. 만약 설계가 잘못되어 의도한 바와 다른 소리가 나왔는데도 적절한 하모닉 디스토션이 걸려서 소리가 '듣기 좋게'되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있는 장비가 됩니다. 


아날로그 장비를 다른 전자 장비 곁에 두거나 다른 케이블을 사용하여 각 장비를 연결하거나 하는 식의 물리적인 변경도 분명 소리를 '다르게' 만들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구조와 배치로 시스템이 변경되어도 그 소리가 더 듣기 좋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정답이 됩니다. 



이러한 듣기 좋은 불완전한 성향은 플러그인으로서는 발생시키기 어렵습니다. 각 사용자가 다운받은 프로그램이 서로다른 퍼포먼스를 낼 오류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죠.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컴퓨팅 파워로 훨씬 세밀하고 정밀한 계산이 가능한 플러그인으로는, 우연한 배치나 실수로 인한 '듣기 좋은 불완전성'을 발생시키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이런 하모닉 디스토션을 발생시키는 과거 장비를 복각한 플러그인의 성공 여부가 '얼마나 비슷하게 소리를 따라가느냐'에 달려 있는 점을 보면, 오히려 플러그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날로그 서밍은 무의미한가?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날로그 서밍의 의미는 가치부여에 있다고 봅니다. 서밍 믹서를 보유하고 계시다면 그냥 쓰시면 됩니다. 다만 이 '의미'는 '음악적'인 부분에 있지 '사운드'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연주할 때, 합주실에서 합주할 때, 공연장 무대에서 관객의 눈을 보며 공연할 때의 느낌이 다르듯이 아날로그 서밍을 위해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조작하는 과정 자체가 영감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서밍 믹서를 통한 적절한 하모닉 디스토션이 먹힌 소리를 들으면서 '바로 이거야'하는 심리적 안정감도 얻을 수 있구요. 


이런 의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믹싱 엔지니어들에게 플러그인만 던져주고, '과거에 당신이 했던 작업들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주세요'라고 한다면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할까요 가능하다고 할까요. 아마 그들은 '믹싱 이전에 녹음된 소스의 퀄리티가 중요합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들이 아날로그 장비를 사용하는 이유는 많이 사용해봤으므로 잘 알고 익숙하고 편해서일 확률이 높습니다. 고품질의 플러그인의 편의성을 인정하고 ITB 믹싱만 수행한다고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엔지니어도 있죠. 최근 국내 스튜디오를 가봐도 잘 구축해놓은 아날로그 장비들을 완전히 사용하시는 분들이 드물었습니다. 플러그인으로 상당부분 대체했다는 이야기가 되죠. 


다만 아날로그 서밍은 특수한 위치가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로만 진행한 믹싱 작업의 막바지에 '아날로그 감수성'을 넣고 싶다는 바램이 있다는 거죠. 보통 아날로그 서밍을 한 결과물은 디지털 서밍보다 '저역대가 두텁고 고역대가 더 열려 있으며 스테레오 이미지가 좀더 넓다'라는 사용자들의 반응이 있습니다. 하지만, ITB 믹싱을 통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을까요? 있다는 데에 한표 던지겠습니다. 다만, 서밍 믹서를 사용하면 '좀 더 손쉽게' 가능하겠죠. 



게다가 아날로그 서밍은 믹싱의 마지막 단계에 있습니다. 그 전까지의 믹싱 작업이 올바르게 수행되지 못했다면 아날로그 서밍의 결과물이 당연히 안좋을 것이고, 믹싱 작업 이전에 녹음이 안좋았다면 원하는 믹싱 결과를 얻기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전에 '좋은 곡'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운드가 좋아도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음악을 들으며 향수에 빠지는 것은 그 음악의 더할나위 없는 사운드가 아니라 그 음악의 음악성이 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은 이미 아날로그 서밍을 수행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아날로그 세대와 퓨전 세대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디지털 세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믹싱에서의 음악적 취향을 강화하고 다양한 시도를 위해 플러그인으로만 수행하고 있던 작업의 일부를 아날로그 장비로 수행해보는 시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훌륭한 품질을 가진 플러그인들을 완벽히 다루어 자신만의 사운드를 내고 있을때 시도해봐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